모래가 어떻게 반도체가 될까?
실리콘에서 컴퓨터 칩까지
우리는 앞에서 반도체를 만드는 대표적인 재료가 실리콘(Silicon)이라고 배웠습니다.
그리고 실리콘은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모래와도 관련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정말 해변의 모래를 가져다가 공장에 넣으면 스마트폰 반도체가 만들어지는 걸까요?
물론 그렇지는 않습니다.
모래에서 바로 반도체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모래나 석영에 들어 있는 실리콘 성분을 꺼내고 아주 깨끗하게 만든 뒤 여러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평범한 돌과 모래 속에 있던 물질이 어떻게 최첨단 반도체로 변하는지 하나씩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꼭 알아야 할 사실
흔히
“반도체는 모래로 만든다.”
라고 말합니다.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지만 조금 더 정확하게 말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반도체의 주요 재료인 실리콘은 모래와 석영 등에 많이 들어 있는 원소입니다.
모래의 주요 성분 중 하나는 이산화규소(SiO₂)입니다.
이산화규소는
실리콘(Si)과 산소(O)가 결합한 물질입니다.
하지만 반도체를 만들려면 산소 등을 제거해서 아주 순수한 실리콘을 만들어야 합니다.
1. 모래 속에서 실리콘을 얻는다
첫 번째 과정은 모래나 석영에 들어 있는 실리콘 성분을 얻는 것입니다.
쉽게 비유해보겠습니다.
바닷물 속에는 소금이 들어 있습니다.
하지만 바닷물 그 자체가 소금은 아닙니다.
물을 증발시키거나 여러 과정을 거쳐야 소금을 얻을 수 있습니다.
실리콘도 비슷합니다.
모래나 석영 속에 실리콘 성분이 들어 있지만, 다른 원소와 붙어 있기 때문에 그대로 사용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높은 온도와 화학 반응을 이용해 실리콘을 분리합니다.
이렇게 처음 얻은 실리콘은 아직 반도체에 바로 사용할 만큼 깨끗하지 않습니다.
2. 실리콘을 아주 깨끗하게 만든다
반도체에서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가 순도입니다.
순도란 어떤 물질이 얼마나 깨끗한지를 뜻합니다.
예를 들어 물 한 컵에 흙이 조금 섞여 있으면 마시기 어렵습니다.
물을 깨끗하게 사용하려면 흙과 불순물을 제거해야 합니다.
반도체용 실리콘도 마찬가지입니다.
아주 작은 불순물 하나가 반도체의 전기적 성질을 바꾸거나 불량을 만들 수 있기 때문에 실리콘을 극도로 깨끗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그래서 여러 정제 과정을 반복합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매우 순수한 실리콘을 이용해 반도체의 기본 재료를 준비합니다.
그런데 이상하지 않을까?
앞 글에서는 실리콘에 일부러 다른 물질을 넣는 도핑(Doping)도 한다고 배웠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불순물을 최대한 없앤다고 했습니다.
서로 반대되는 이야기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차이가 있습니다.
원하지 않는 불순물은 제거해야 합니다.
반면 도핑은 필요한 위치에 필요한 물질을 아주 정확한 양만큼 의도적으로 넣는 것입니다.
요리에 비유하면 쉽습니다.
음식에 먼지가 들어가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하지만 소금을 정확한 양으로 넣는 것은 요리의 일부입니다.
반도체도 마찬가지입니다.
3. 실리콘으로 커다란 원기둥을 만든다
정제한 실리콘을 확보했다면 이제 반도체를 만들기 좋은 모양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먼저 실리콘을 높은 온도에서 녹입니다.
그리고 특별한 방법을 이용해 아주 일정한 결정 구조를 가진 커다란 실리콘 덩어리를 성장시킵니다.
완성된 모습은 길고 둥근 원기둥과 비슷합니다.
이런 실리콘 결정 덩어리를 보통 잉곳(Ingot)이라고 부릅니다.
쉽게 생각하면
반도체 웨이퍼를 만들기 위한 아주 큰 실리콘 원통
이라고 이해하면 됩니다.
4. 실리콘 원기둥을 얇게 자른다
이제 커다란 실리콘 원기둥을 아주 얇게 잘라냅니다.
햄이나 소시지를 얇게 써는 모습을 떠올려보세요.
원기둥을 얇게 자르면 동그란 원판이 만들어집니다.
이 원판을 웨이퍼(Wafer)라고 합니다.
웨이퍼는 반도체를 만드는 아주 중요한 출발점입니다.
앞으로 수많은 반도체 회로가 이 웨이퍼 위에 만들어집니다.
웨이퍼는 왜 동그랗게 생겼을까?
반도체 공장 사진을 보면 커다란 은색 원판을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웨이퍼입니다.
웨이퍼가 동그란 이유는 앞에서 만든 실리콘 결정이 원기둥 모양이기 때문입니다.
원기둥을 가로로 자르면 당연히 원 모양의 판이 나옵니다.
현재 반도체 산업에서는 큰 웨이퍼를 많이 사용합니다.
웨이퍼가 커지면 한 번에 더 많은 반도체 칩을 만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피자를 생각해보면 쉽습니다.
작은 피자 한 판보다 큰 피자 한 판에서 더 많은 조각을 얻을 수 있습니다.
5. 웨이퍼 표면을 아주 매끄럽게 만든다
그런데 실리콘 원기둥을 그냥 잘랐다고 해서 바로 반도체를 만들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잘라낸 표면에는 작은 흠집이나 울퉁불퉁한 부분이 있을 수 있습니다.
반도체 회로는 매우 작기 때문에 이런 작은 흠집도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웨이퍼 표면을 아주 정밀하게 갈고 닦습니다.
거울처럼 평평하고 매끄러운 표면을 만드는 것입니다.
쉽게 말하면
반도체 회로를 그릴 수 있는 아주 깨끗한 도화지를 준비하는 과정입니다.
6. 이제 웨이퍼 위에 회로를 만든다
웨이퍼가 준비되면 이제 본격적인 반도체 제조가 시작됩니다.
중요한 점이 하나 있습니다.
웨이퍼 자체가 완성된 반도체는 아닙니다.
웨이퍼는 반도체 회로를 만들기 위한 바탕판입니다.
깨끗한 웨이퍼 위에 아주 작은 회로를 반복해서 만들어야 합니다.
쉽게 비유하면
웨이퍼 = 도화지
반도체 회로 = 도화지에 그리는 그림
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다만 문제는 그림의 크기입니다.
반도체 회로는 우리가 연필로 그릴 수 있을 만큼 크지 않습니다.
눈으로 보기 힘들 정도로 작은 구조를 만들어야 합니다.
그래서 반도체 공장에서는 빛과 화학물질, 특수한 장비를 이용합니다.
7. 빛으로 회로 모양을 그린다
반도체 제조에서 매우 중요한 기술 중 하나가 노광(Photolithography)입니다.
이름은 어렵지만 원리는 사진과 비슷합니다.
먼저 웨이퍼 위에 빛에 반응하는 특별한 물질을 얇게 바릅니다.
그리고 원하는 회로 모양을 빛으로 비춥니다.
빛을 받은 부분과 받지 않은 부분에 차이가 생기면서 아주 작은 회로 모양을 만들 수 있습니다.
도장을 찍는 모습을 생각해도 좋습니다.
종이에 원하는 모양을 찍듯이, 웨이퍼 위에 회로의 모양을 아주 작게 만들어가는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사용하는 아주 특별한 빛 중 하나가 EUV입니다.
하지만 EUV는 조금 더 뒤에서 자세하게 배우겠습니다.
8. 필요 없는 부분은 깎아낸다
회로 모양을 만들었다면 필요한 부분과 필요하지 않은 부분을 구분해야 합니다.
필요 없는 부분을 제거하는 과정을 식각(Etching)이라고 합니다.
‘식각’이라는 말이 어렵다면
아주 정밀하게 깎아내는 과정
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조각가가 돌을 깎아 원하는 모양을 만드는 것과 비슷합니다.
다만 반도체에서는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작은 크기에서 이 작업이 이루어집니다.
9. 필요한 물질을 아주 얇게 쌓는다
깎는 것만으로 반도체를 만들 수는 없습니다.
필요한 물질을 웨이퍼 위에 아주 얇게 쌓기도 합니다.
이 과정을 증착(Deposition)이라고 합니다.
쉽게 말하면
웨이퍼 위에 아주 얇은 재료 층을 입히는 것
입니다.
케이크를 만들 때
자주 묻는 질문
모래를 바로 녹이면 웨이퍼가 되나요?
아닙니다. 모래에 포함된 이산화규소에서 실리콘을 분리하고 불순물을 극도로 낮춘 다결정 실리콘을 만든 뒤, 단결정 잉곳 성장과 절단·연마 과정을 거쳐야 웨이퍼가 됩니다.
모든 반도체가 실리콘으로 만들어지나요?
실리콘이 가장 널리 쓰이지만 전력·고주파·발광 소자에는 탄화규소(SiC), 질화갈륨(GaN), 갈륨비소(GaAs) 등 다른 재료도 사용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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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식 참고자료
- Semiconductor Industry Association, Semiconductors 101
- ASML, Semiconductor manufacturing process step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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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여러 층으로 쌓는 모습을 생각해보세요.
반도체도 다양한 물질을 아주 얇은 층으로 쌓고 다시 깎는 과정을 반복하면서 복잡한 구조를 만듭니다.
반도체는 한 번만 그려서 만드는 것이 아니다
여기에서 반도체 제조가 어려운 이유가 나타납니다.
웨이퍼 위에 회로를 한 번 그리고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필요한 물질을 쌓고,
회로 모양을 만들고,
깎아내고,
다시 물질을 쌓고,
다시 회로를 만들고,
또 깎는 과정을 계속 반복합니다.
이런 복잡한 과정이 수없이 이어지면서 작은 반도체 속에 아주 복잡한 구조가 만들어집니다.
그래서 첨단 반도체 공장은 세계에서 가장 정밀한 공장 중 하나라고 할 수 있습니다.
10. 웨이퍼 한 장에는 반도체가 여러 개 들어 있다
커다란 웨이퍼 하나가 반도체 칩 하나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웨이퍼 위에는 똑같은 모양의 반도체가 여러 개 만들어집니다.
바둑판을 생각해보겠습니다.
커다란 판 위에 여러 칸이 있듯이,
웨이퍼 위에도 작은 반도체들이 반복해서 만들어집니다.
각각의 작은 반도체 영역을 흔히 다이(Die)라고 부릅니다.
나중에 웨이퍼를 잘라 각각의 다이를 분리합니다.
11. 만들어진 반도체가 제대로 작동하는지 검사한다
반도체 제조가 끝났다고 해서 모든 칩이 완벽하게 작동하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칩은 제대로 작동하고,
어떤 칩은 제조 과정에서 작은 문제가 생길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웨이퍼 상태에서 각각의 칩이 제대로 작동하는지 검사합니다.
예를 들어 웨이퍼에서 100개의 칩을 만들었는데
90개가 정상적으로 작동한다면,
아주 단순하게 생각했을 때 90개를 사용할 수 있습니다.
이때 중요한 개념이 수율(Yield)입니다.
수율은 나중에 삼성전자와 TSMC 같은 반도체 회사를 이해할 때 매우 중요한 개념이므로 별도의 글에서 자세히 배우겠습니다.
12. 웨이퍼를 잘라 작은 칩으로 만든다
검사가 끝나면 커다란 웨이퍼를 잘라 각각의 반도체 칩을 분리합니다.
큰 초콜릿 판을 작은 조각으로 나누는 모습을 생각하면 됩니다.
이제야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작은 반도체의 모습에 가까워집니다.
하지만 아직 끝난 것은 아닙니다.
작은 칩은 너무 약하고 다른 전자제품과 바로 연결하기도 어렵습니다.
그래서 칩을 보호하고 다른 부품과 연결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합니다.
13. 반도체를 튼튼하게 포장한다
이 과정을 패키징(Packaging)이라고 합니다.
패키징이라고 하면 택배 상자를 떠올릴 수 있습니다.
반도체 패키징도 어느 정도 비슷한 역할을 합니다.
작은 반도체 칩을 보호하면서
전기가 들어오고 나갈 수 있도록 연결 통로를 만들어줍니다.
예전에는 패키징을 단순히 마지막 포장 과정 정도로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AI 반도체 시대에는 패키징 기술 자체가 반도체 성능을 결정하는 매우 중요한 기술이 되고 있습니다.
나중에 HBM과 CoWoS를 배울 때 다시 등장할 내용입니다.
14. 마지막 검사를 통과하면 제품에 들어간다
패키징까지 끝난 반도체는 다시 한번 여러 검사를 받습니다.
전기가 제대로 흐르는지,
계산은 정확하게 하는지,
높거나 낮은 온도에서도 문제가 없는지
등을 확인합니다.
검사를 통과한 반도체는 이제 다양한 제품으로 갑니다.
스마트폰으로 가기도 하고,
컴퓨터 그래픽카드에 들어가기도 하고,
자동차에 들어가기도 하고,
AI 데이터센터에 들어가기도 합니다.
모래에서 스마트폰까지 한 번에 정리해보자
지금까지의 과정을 아주 간단히 연결해보겠습니다.
모래·석영
↓
실리콘 성분을 얻는다.
↓
실리콘을 아주 깨끗하게 정제한다.
↓
커다란 실리콘 결정인
잉곳을 만든다.
↓
잉곳을 얇게 잘라
웨이퍼를 만든다.
↓
웨이퍼 위에
회로를 만든다.
↓
물질을 쌓고 깎는 과정을 반복한다.
↓
완성된 반도체를
검사한다.
↓
웨이퍼를 잘라
작은 칩으로 나눈다.
↓
칩을 보호하고 연결하는
패키징을 한다.
↓
최종 검사를 마치면
스마트폰·자동차·컴퓨터·AI 서버 등에 사용된다.
평범한 광물 속에 있던 실리콘이 이렇게 긴 과정을 거쳐 최첨단 전자제품의 핵심 부품으로 바뀌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반도체 공장은 그렇게 비쌀까?
여기까지 읽으면 이런 궁금증도 생길 수 있습니다.
“웨이퍼에 회로를 그리는 것뿐인데 왜 반도체 공장을 짓는 데 그렇게 많은 돈이 들까?”
이유는 반도체의 크기에 있습니다.
우리가 사용하는 첨단 반도체의 구조는 너무 작아서 먼지 하나도 큰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책상 위에 떨어진 먼지는 사람에게는 아주 작게 보입니다.
하지만 아주 작은 반도체 회로 입장에서 보면 거대한 바위처럼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반도체 공장은 공기 속 먼지까지 철저하게 관리하는 클린룸(Clean Room)을 사용합니다.
장비도 매우 정밀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런 고가 장비가 수많은 제조 단계마다 필요합니다.
그래서 첨단 반도체 공장을 만드는 것은 매우 어려우며 막대한 자본과 기술이 필요합니다.
오늘 내용에서 꼭 기억할 네 가지
첫째,
반도체를 모래 자체로 만드는 것은 아닙니다.
모래와 석영 등에 들어 있는 실리콘을 얻어서 사용합니다.
둘째,
반도체용 실리콘은 매우 높은 순도로 정제해야 합니다.
셋째,
정제한 실리콘으로 웨이퍼라는 둥근 원판을 만듭니다.
넷째,
웨이퍼 위에 물질을 쌓고 깎고 회로를 그리는 과정을 반복해서 반도체를 만듭니다.
그런데 반도체가 계산하는 진짜 비밀은 무엇일까?
지금까지 우리는 반도체를 만드는 재료와 큰 제조과정을 살펴봤습니다.
하지만 아직 중요한 질문이 남아 있습니다.
웨이퍼 위에 아주 작은 회로를 만들었다고 해서 어떻게 컴퓨터가 계산을 할 수 있을까요?
그 비밀은 반도체 안에 들어 있는 아주 작은 전기 스위치에 있습니다.
바로 트랜지스터(Transistor)입니다.
트랜지스터 하나는 매우 작은 부품이지만,
수십억 개의 트랜지스터가 함께 움직이면 스마트폰을 작동시키고 게임을 실행하고 인공지능까지 계산할 수 있습니다.
다음 글에서는
「트랜지스터란 무엇일까?|컴퓨터 속에 들어 있는 수십억 개의 작은 스위치」
를 통해 반도체가 실제로 계산을 할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원리를 알아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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